<주역(周易)>에는 64개의 괘(卦)가 나온다. 그 가운데 마지막 두 괘가 기제(旣濟)와 미제(未濟)다. 기제는 ‘이미 건넜다’는 뜻이고, 미제는 ‘아직 건너지 않았다’는 뜻이다. 괘상(卦象)으로 보면 기제는 수화기제(水火旣濟)라고 해서 위에 물[☵]이 있고 아래에 불[☲]이 있어 불이 물을 끓이고 있는 형국이다. 미제는 화수미제(火水未濟)라고 해서 위에 불이 있고 아래에 물이 있다.
이 두 괘의 의미를 주역 원문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는 것으로 형상화 했다. 기제는 여우가 물을 다 건넌 것에 비유했고, 미제는 여우가 물을 거의 다 건넜지만 마침내 꼬리를 물에 적신 것에 비유했다. 그런데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은, 마지막 64번째 괘가 종결을 뜻하는 기제가 아니라 미완(未完)을 뜻하는 미제라는 사실이다.
역대에 <주역>의 괘상을 잘 설명한 대표적 인물로 왕필(王弼, 226~249)이 있다. 그는 기제를 두고 “위태로움이 이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”면서 사뭇 긴장했다. 미제를 두고서는, “믿음을 가지고 술을 마시니 허물이 없다”고 하면서 낙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. 그러면서도 기제든 미제든 모든 경우에 중심[中]을 잡고 절도[節]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.
동양에서 중(中)의 자리는 중요하다. 중의 자리는 생명성을 보존하는 자리이며, 그 생명성을 온전히 발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. 중의 자리는 어딘가에 따로 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. 중은 정해진 자리가 없다. 중의 자리는 유동적이다. 이 유동성을 상실하는 순간 중은 질곡에 빠져 중됨을 잃고만다. 그래서 <중용(中庸)>에서는 ‘시중(時中)’이라고 해서 시(時)자를 덧붙였다.
중은 지혜로워야 도달할 수 있는 자리다.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, 우리 때는 안그랬다는 소리만 주구장창하는 늘어놓는 사람은 장할지는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. 지혜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많이 부담스럽게 한다.